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웅진전과 계곡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강점기 계룡산 갑사 계곡의 운치있는 풍경이다. 계곡 옆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은 구한말 경술국치에 앞장선 친일파 윤덕영이 노년에 머물던 간성장(艮成莊)이라 불리는 별장으로 추정된다. 간성장은 공주의 갑부 홍원표가 갑사 앞 계곡 암반에 건축하여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
1967.02.28,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12차 이사회 회의 속기록이다. 앞서 총회자료와 마찬가지의 의제가 논의되었고, 제11차 이사회 회의록 채택과 명예이사장 천흥락 선생에 대한 기증품 전달식 안건, 기본운영 세입방안 협의, 문화원 송사현황에 대한 의제…
화마루공소 구술조사 사례자인 최인철의 2008년 천주교 대전교구 1단계 소공동체 봉사자 과정 수료증이다.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은 평신도 봉사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순교영성교육 과정이다. 최인철은 모태 가톨릭 신앙인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화마루공소 회장을…
1975.09.29부터 6일간 공주문화원에서 진행한 요리 및 분식대강습회 안내문이다. 혼분식과 감자요리가 장려된 당대의 문화가 반영된 요리교실이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전면에는 '미원'의 광고가 수록되어 있다.
윤여헌 교수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개인 조사 연구한 것이다. 일본열도의 구성과 인구수, 쓰시마와 부산 간 거리, 일본인의 직업에 대한 긍지, 일본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일본인의 성격, 혼네와 다테마에, 언어생활의 혼란, 우리의 반성이라는 주제로 적혀있으며, 뒷면…
윤여헌이 아메미야(雨宮)에게 보내는 편지 초안문이다. 윤여헌은 편지에서 백제문화제 기간 중 아메미야가 입원 중이어 공주에 방문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였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에 이어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아메미야의 가교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건강을…
공주군 장기면 제천리 새마을 창고의 양곡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기록한 장부이다. 1974~1977년까지의 양곡보관 불출내역과 보관료 수령 내영이 기재되어 있고, 양곡보관증도 함께 붙어 있다. 내지 마지막 장에는 새마을 창고 결산서 및 건물 소재지가 기록되이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2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1942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조선간이생명보험증서로, 피보험자는 공주군 장암리 주민이다. 증서에는 보험금 3백원에 대한 보험기간 및 계약자, 수취인 등의 내용과 함께 조선간이생명보험수급과 부속법령에 의해 조선간이생명보험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명부전에 소장된 정토종 포교당 시왕도-제7태산대왕에 관한 것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 어원 및 무령왕 묘지석 관련 메모이다. 좌측에는 금강과 웅진의 지명 어원에 대한 메모가 고구려 남진정책과 함께 적혀있으며, 그 하단에는 취리산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가 적혀있다. 우측에는 무령왕 묘지석의 원문과 일어 번역문이 기재되어…
일제강점기 상설점포를 비롯해 노점상까지 생생한 공주의 시장풍경 엽서이다. 자료 앞쪽 쌀을 판매하는 싸전에서 짚신을 걸어 함께 판매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공주에서는 충청감영으로 약령시가 매우 성행하여 충청도 각지에서 올라온 약재상으로 붐볐던 곳이다. 지금의 봉황초등학교…
일본국 사가현 가라쓰시 소재의 가카라시마에 무령왕 탄생기념비를 설치하는 공사의 계획안이다.
시미즈키타 로타리 클럽 회장인 유이 타케하루(油井 武治)와 관련한 문서이다. 유이 타케하루의 약력, 저서, 논문, 강연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공주대 사학과 이남석 교수가 백제불교유적의 문화유산적 가치에 대해 일본대학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점으로 일본 문과대학 교수인 中村修也씨가 토론문을 작성한 내용이다.
1963.02.04~13 동안 공주문화원에서 진행된 요리강습회의 개최 안내문이다. 등록금 100원을 납부하면 매일 실습이 가능했으며 총 3개의 반으로 나뉘어 강습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직장에 근무하는 여성을 위해 야간교실도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