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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반포공립보통학교에서 제6학년 임월수 학생에게 수여한 상장으로, 학년 중 1일의 결석없이 과업을 정진하여 상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상장에 따르면 부상으로 벼루집 2개를 지급하였다.
충청남도지사가 백제문화제 행사계획에 대한 협의회 개최를 알리는 공문
1956년 대한국경원호협회 공주군계룡면분회에서 발행한 제1기분 군경원호회비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으로, 일금 이백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상단에 '영수증'과 함께 군(軍)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공주시 새마을전직 모임회 참석협조 공문
1957년 계룡면 유평리의 농가에서 작성한 위임장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는 방법으로 작성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토지 매도행위를 위해 일정기간동안 권한을 위임한다는 내용이 작성되어 있고, 위임자와 위탁자의 성명 및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1956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제2기분 가호세 영수증으로, 일금 이백이십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1968.08.30, 공주문화원 도서관에서 진행될 제2경재론에 관한 교양강좌 개최 안내문이다. 공주사범대학 이근기 교수가 강사로 나서며, 경제계획과 제2경제라는 것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된다.
1977.03.16,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39차 이사회 및 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회의를 통해 신임 이사장 취임 보고를 진행하였고, 1976년도 세입세출에 관한 집행 내역을 토의했다. 나아가 1977년도 사업계획 보고도 진행했다.
계룡국민학교재건기성회에서 단기 4292년에 발행한 기성회비 통지서와 영수증이다. 가운데 점선을 기준으로 우측은 통지서로, 납부금, 납부자의 성명과 납부기한, 납부처가 명시되어 있으며, 좌측의 영수증에는 납부 금액 일금 천삼백원과 영수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백제문화제집행위원회가 주관하는 제 20회 백제문화제의 집행위원명단, 행사비 수입부 및 행사비 지출부, 행사장소와 개요, 행사일정을 수록함
500006924'와 양면으로 되어있음
일제강점기 공주군의 헌금으로 제작한 보국 776호의 모습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전시동원령을 선포하고 가혹한 수탈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각 인민에게 일정금과 각종 철제기구를 징발했고, 각 지역에서는 그 기금으로 전투기와 같은…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으로, 현금 대신 소맥 2되 5합을 영수하였다는 내용이다. 단기 4284년 6월 28일 계룡국민학교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로 발행되었는데, 당시의 학년/반이 기재되어 있다. 사친회의 회장과 이사의 직인도 찍혀있다.
두 정보가 있는 문서이다. 좌측은 세계문화유산 히메지성 지정기념 출판에 관하여, '일녀도카가미'라는 논문집을 발간했다는 소식이며, 우측은 성곽연구실연보 제3호를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1910년대 초, '조선의 명소(朝鮮名所)'시리즈 엽서로 현재의 공산성 쌍수정 부근에서 금강과 공북루 방향을 바라본 모습이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이곳은 충청병영의 중군영지로서, 자료 속에는 중군영 주요건물이 아직 남아있다. 특히 주출입구인 2층 규모의…
1986.10.11, 공주문화원 생활관에서 진행한 제54차 임시총회 회의록이다. 당시 임시총회에서는 1986년도 제1차 추가경정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가 이뤄졌으며, 문화원 직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논의도 간략히 언급되었다.
공주우편국 앞에서 서쪽의 봉황산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도청과 가깝고 근처에 법원이나 경찰서, 충청남도금융조합연합회관 등 주요기관이 있어 우편국 앞은 인파로 붐볐다. 한편 1920년대 조선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범사회적인 노동운동이 발생했을 때,…
2009 계룡산 산신제 어울림 우리춤 우리가락 사진첩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웅진백제의 중국남조와의 관계에 관한 메모이다. 기록에서는 남조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자기와 청자양형기, 전문도기를 제시하였으며, 웅진 백제시대에 남조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기록해 두었다.
일제강점기 조치원에서 공주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터로,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에서 한양가는 삼남대로 길목에 있는 장기대나루 북단이다. 장기대나루는 옥룡동에서 금강을 건너 시목동(감나무골)로 연결되었던 나루로 장기진(杖基津)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을 장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