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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244건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감영과 본아(목관아), 중군의 관직명이 담겨 있다. 관직명 옆에는 그 인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숫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공주군 이인면 오리(현 공주시 오곡동)에 사는 이건표가 이인면사무소에 세금을 내고 받은 납세고지서이다. 세종은 토지세로서 1958년 제2기분으로 1섬(石) 8되(升)를 냈다. 2叭에 1킬로그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인면장은 박승식(朴承植)이다.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행사계획과 행사종목, 종목별 세부계획, 역사문화행렬 추진계획, 연혁을 수록함
1990년 충청남도 공주교육청에서 주최한 모형항공기 공작 경진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4학년 조재희 학생이 글라이더 초등2부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은 내용의 상장이다.
연도미상의 엔도치쿠센(遠藤竹泉)에 관한 이력서류이다. 유니세프 회원이며 훈장, 표창, 서도력(서예능력 書道歷, 입선경력 등 소개), 국제교류, 학력, 직업(현업) 등을 다루고 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십환정을 사친회비 6월분으로 청구하였다. 단기 4286년 7월 14일에 발행하였으며, 발행한 담임선생님은 성명을 기재하지 않고 대신 도장을 찍었다. 계룡국민학교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로 발행된 것을 확인할 수…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문화사적 관련 메모이다. 앞면에는 무령왕릉, 산성공원, 대통사지, 취리산, 수원사지와 같은 백제유적과 관련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 뒷면에는 충청감영, 우영, 중군영, 취원루, 객사, 향옥, 사창 등 조선시대 유적이 기재되고, 그…
1980.03.22,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44차 정기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1979년도 사업실적보고와 세입세출결산안 의결, 감사보고를 진행했다. 더불어 1980년도 세입세출 예산안을 논의하고 사업계획서를 의결했다.
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463184
백제문화공주부여대전선양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인사말과 각 지역별 문화제일정표를 수록함
1955년 농지개혁사업특별회에서 발행한 상환통지서, 수납통지서 및 영수증서이다. 고지서에 의하면 농지개혁법 제13조 및 시행령 35조에 의해 단기 4287년 11월1일까지 금융조합에 농지대가개정 상환액을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납부통지서 및 영수증은 공란으로 남아…
1957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2,200환을 납입한 것을 증빙하고 있다. 9월분의 수업료와 호국단비, 사친회비를 영수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은 금액 상단에 적혀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상반정(現 봉황동 일원) 부근에 위치한 상반여관이다. 당시 공주의 대표적인 여관으로 시찰단 등 주요인사가 머물기도 했다. 엽서 중간에 상반여관 입구의 모습과 측면을 후편집하여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 누마즈로터리클럽 회원 영접 성금 내역서이다. 번호, 직책, 성명, 성금액이 적여있다. 총 29명이 3,260,000원을 성금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문헌 목록이다. 메모에는 충청남도 공주목접노비관비거접명록, 영학원거존절목, 백장절목, 금성시집 등의 문헌목록이 기재되었다. 또, 우측에는 1848년 조득림 충청감사, 을축년 오봉돈, 오상천이라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갑사의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모시는 대적전(大寂殿)과 보물 제257호로 지정된 갑사 부도의 모습이다. 엽서 속 설명에는 계룡산 갑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데,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높이가 약 850m이다. 봄에는 진달래,…
일본에서 윤여헌 교수에게 보낸 편지로,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 윤여헌 교수의 안부를 묻고 있다.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공주군교육장 최이진 씨의 축사로, 원종국회장의 업적과 개교50주년을 맞아 활약하고 있는 정안인들을 회고하며 학교의 앞날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계룡산 단풍나무 숲길 모습이다.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해 계룡산을 찾은 지역유지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우측의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