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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제민천 상류 제방길 위에서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을 바라본 모습이다. 1917년 대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제민천은 1918~19년 복구공사를 통해 정비가 이뤄졌다. 엽서 속 모습은 정비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민가 뒤 왼쪽부터 취원루로…
1957년에 영명중학교에서 발행한 졸업장이다. 영명중학교의 3년 전과정을 졸업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2010년 4월 6일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에서 작성한 문화재 현황조사서다. 진주류씨 묘역, 고청 서기 묘역, 윤증 묘역, 대도사에 관한 조사 내용, 조사 의견이 적혀있다.
1978년 공주군 교육청에서 우성중학교 신재옥 씨와 오재봉 씨에게 발행한 상장이다. 1978년도 반공교육자료 전시회 TP자료 부문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교육에 효용성이 높은 작품을 출품하여 입상하여 상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현 공주봉황초등학교의 전신인 공주공립상반소학교가 현 위치인 봉황동으로 이전했을 때의 모습이다. 상반소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다니던 학교로서 금학동의 현 공주고등학교 부지에 공주심상고등소학교로 개교했다. 그러다 소학교 부지가 공주고등보통학교 신축부지로 선정되면서 당시…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마곡사 고방에 소장된 '공주군태화산마곡사심검당공요번와기'에 관한 것이다. 본 카드의 유물은 마곡사 심검당을 중수한 기념으로 제작되었다.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의 동향인들이 모여 1961년 조직한 성실친목계에서 보관하던 영수증이다. 산성동에 위치한 풍년상회에서 모임을 위한 청과를 구매한 것을 증빙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물가를 알 수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석하 김창수(石霞 金昌洙)의 한시이다. 같은 한시가 세 번 반복되어 적혀 있다. 본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南湖泗沘此江流
남호의 사비는 이 강에 흐르고 있나니,

秀嶂奇岩別遠洲
솟아오른 산봉우리 기이한 바위는 별천지의…
2005년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한 우금티소식 제2호의 복사본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사단법인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출범식
법인 설립 경과
우금티 소식
구전조사를 통해 나타난 공주의 동학농민전쟁 관련 사망자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1953년 납부금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7월의 납부금으로, 일금 이만오천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1928년 반포공립보통학교에서 임월수 학생에게 수여한 수업증서이다. 수업연한 4개년의 보통학교 중 1학년의 과정을 수료하여 이를 증명한다는 내용이다.
1970.03.28, 공주문화원에서 진행한 제8차 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신임 이사 선출에 대한 건과 영사실 증축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1975학년도 정안초등학교 내 제반사항을 알려주는 학교요람 안내서이다.
장학사인 기증자를 초등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는 문서이다. 임용기간이 기재되어 있고 하단에 대통령 직인이 찍혀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1년 1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1997년 내무부에서 발행한 표창장으로, 충청남도 공주금학초등학교 어린이소방대의 불조심 생활화운동을 실천하여 모범이 되어 이를 표장하는 내용이다. 당시 내무부장관인 조해녕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1956년 UN국제연합한국협회충청남도 공주군지부에서 발행한 회비납입통지서와 영수증사본, 영수증이다. 통지서에 따르면 1955년분 보통회원비 일금 일백원을 12월 30일까지 공주군지부에 납입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영수증 및 통지서 표의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일본 교토에 사는 아베테루야(阿部 照哉) 씨 내외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온 연하장이다. 즐거운 크리스라고 시작하면서 자신들은 유럽 여행을 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김용철 교수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라는 책을 발간하며 쓴 것이다. 서신에는 자신이 공주사범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음에도 문헌정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