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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메미야(雨宮)가 그의 부친이 소장하던 골동품 일부를 가지고 윤여헌과 만나게 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보낸 편지이다. 아메미야는 자신의 부친이 앵산공원 아래에 살면서 평소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전시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하였다. 그러면서 전쟁이…
1956년 공주중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1,2,3월 간 3개월분의 재건기성회비 일금 일천팔백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한국저축은행 공주지점에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상단에는 '공중'이라는…
부여군수가 제 26회 백제문화제를 위한 백제문화선양위원회 개최를 알리는 공문과 참석위원명단
금제관식, 무령왕릉석수, 계룡산, 공산성, 마곡사, 무령왕릉, 석장리박물관, 계룡산남매탑, 창벽, 한옥마을과 관련된 펜화가 그려져 있음
1989년 공주사범대학부설중등교원연수원에서 진행한 연수교재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법사 교육의 새로운 동향
1. 헌법의 기초원리로서의 민주주의
2. 국민주권
3. 기본권
4. 권력분립주의
5. 헌법개정
1989년 공주군 민속지 제작을 위해 공주문화원에서 제작하여 조사원에게 배포한 기초설문조사지의 양식이다.
계룡국민학교 제52회 졸업생인 민대순님의 3학년 아동발달상황통지표 및 수료증이다. 교과학습발달 및 행동발달과 특별활동, 신체검사, 출결상황과 가정통신이 기재되어있다. 수료증에는 3학년 과정을 수료하였다는 증명이 담겨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0년 6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나당 연합군 시기의 역사 관련 메모이다. 660년 7월의 부여 함락부터 시작하여 663년 7천 병사 파견과 당군 장수 설인귀의 웅진 도착까지의 역사가 개략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목표 및 행사종목, 행사종목별 세부시행계획, 역사문화행렬 행사계획, 경축분위기 조성 계획, 백제문화제 연혁을 수록함
1968.01.15,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18차 이사회 회의 속기록이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문화원 운영 협의가 진행되었고, 신축청사와 관련된 소송 내용을 협의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관련 강의자료이다. 문서의 서두부분에 2000년 7월 28일과 8월 1일의 교련반을 위한 강의내용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강의안에는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남북연합에 관한 내용이 담긴 제2항을 설명하고 있다.
2009년 10월 26일 평산빌딩에서 진행한 우금티 기념 미술관 연구소 개소식 안내장이다. 일시, 장소, 식순이 적혀있다.
새마을지도자 충청남도협의회 시 · 군 협의회장 회의 회의자료 (4)
1920년대 초반 제민천 상류 제방길 위에서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을 바라본 모습이다. 1917년 대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제민천은 1918~19년 복구공사를 통해 정비가 이뤄졌다. 엽서 속 모습은 정비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민가 뒤 왼쪽부터 취원루로…
1. 기본운영 현황-문화원의 지표, 본원 운영기구 및 사업체계 도표, 본원 이사 및 운영위원 명단, 본원 직원 명단, 본원 사업지표 및 운영방침, 본원 운영방침, 본원 연혁, 중요대외 기관으로부터 감사패 및 표창장을 받은 실적표, 본원 시설 현황(중요비품대장),…
국립공주박물관 2015년 자문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이 제출한 의견에 대한 조치결과들을 기재한 결과서이다. 당시 자문위원으로는 박영복, 윤용혁, 나태주, 윤여헌, 황규형이 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에 있는 명국삼장비, 즉 유격장 남공 종덕비, 망일사적비, 위관 임제비 3개의 비석을 담은 사진엽서이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8년 명나라의 세 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명의…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웅진백제의 중국남조와의 관계에 관한 메모이다. 기록에서는 남조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자기와 청자양형기, 전문도기를 제시하였으며, 웅진 백제시대에 남조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기록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