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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334건
1951년 공주 계룡면 주민에게 청구된 국민회비 영수증이다. 문서에 의하면 일금 오백원을 영수하였으며, 본 영수증에 국민회의 공인과 수취자인이 없는 것은 무효하다고 안내되어 있다.
영명중학교의 1951~1957년 졸업생과 영명고등학교의 1953~1957년 졸업생 명단을 기록해놓은 문서이다. 졸업장 발행번호, 졸업년월일, 졸업장성명, 생년월일, 비고란으로 표가 인쇄되어 있는데, 번호와 성명만 기입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앵산공원과 선교사가옥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엽서의 하단에 앵산공원을 Sakurayama로 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에 수록된 마곡사 전경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엽서이다. 1911년 일제는 조선의 사찰을 정리 및 통제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하고 전국의 31개 사찰을 본산으로 지정했다. 그 중 마곡사는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본산 사찰로 지정되어…
우측에서 좌측으로 세로 읽기방식으로 글을 작성하였으며, '부(負)8년8월2일'로 보아 1955년 8월 2일에 빚을 졌고, 이후 빌린 일금 오천팔백오십원과 백미 2두(斗)을 당해 12월 13일까지 갚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빌린 백미 2두(斗) 하단에는 괄호로 당시 시가…
일제강점기 반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임월수 학생의 신체검사표이다. 학교명, 성명, 생년월일 등 기본인적사항을 기재하는 곳이 가장 우측에 있고 연치 및 학년에 따라 1년에 한 번씩 총 6번의 검사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발육상태, 영양상태, 시력, 청력,이질, 치아 등…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1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8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1993학년도 공주대학교 학생정원 조정에 관한 회의자료
바른 행실을 특별히 참고하여 궁내대신이 금일봉을 내린다는 문서이다.
1968.08.08, 공주문화원 옥상에서 진행될 일본영화상영회 초청장이다. 본 자료에 의하면 공주 관내 주부에게 문화생활 공간을 제공하고자 행사를 개최했다. 일본의 교육과 오늘의 일본국민 모습이라는 두 가지 영화가 상영되었다.
1927년 개최된 사종품평회에서 공주군 주외면 봉정리에 사는 김휘집이 면입모(棉立毛) 품평부분 4등을 하여 받은 상장이다.
1928년 2월 공주 산성정 잠업전습소 남자부에서 수학하던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거주하는 진공식의 수업 필기 공책이다. 잠업전습소에서 수업을 받은 내용을 공책에 기재했다. /…
공주시에서 실시한 '공주 시민대학 마을가꾸기 심화과정' 수료증서이다. 공주 시민대학 마을가꾸기 심화과정은 '마을가꾸기 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교육받은 수료생들 중 원도심 생활권자를 대상으로 교육생을 선발하여 활동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계룡국민학교에서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 발행한 교과서 대금 내역 통지서이다. 청구받은 학생의 학년/반과 성명을 기재할 수 있는데, 4학년 2반이라고 적혀있다. 대금은 1학기의 청구내역과 국어, 사회, 과학, 셈본 등 각 교과명 및 상세 금액이 적힌 2학기의…
1. 기본운영계획개요-본원 운영기구 및 사업체계도표, 본원 이사 명단, 본원 직원 명단, 본원 사업지표 및 운영방침, 본원 연혁, 본원 시설 현황, 탑의 노래(원가), 원사 전경도, 원사 평면도 / 2. 1984년도 사업계획-본원 설립의 목적과 의의, 금년도…
1957년 공주영명중학교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6월분 수업료, 호국단비, 사친회비로 2,200환을 청구하고 납입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수부(受附)와 등기 목적, 원인일, 권리자의 성명과 주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등기제에 의하면 소유자 이전 신청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등기제를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등기제 대신 등기신청을 마친 문서라는 뜻으로 '등기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