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영명학교 동창회에서 발행한 50주년 기념행사 안내문이다. 안내문 말미에는 교우지(校友誌) 간행에 사용할 졸업생 명부를 위하여 성명, 생년월일, 본적, 졸업날짜, 성별, 현주소 등을 적어 회신할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당시 동창되장은 황인식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연혁에 대한 메모이다. 1988년 3월 5일부터 시작된 웅진문화연구회의 간략한 연혁과 당면과제 등에 관한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다.
1955년 공주중학교에서 발행한 교과서 구매 내역 및 영수증이다. 도서명과 저자, 출판사, 가격, 구매여부 등이 표로 적혀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고대 한일관계와 관련된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일본 쇼토쿠 태자, 요메이 덴노, 긴메이 덴노의 출생에 관한 작은 메모, 그리고 일본의 불교수용에 대한 메모가 담겨 있다. 한편, 메모지로 사용된 종이는 A4이면지로 공주로타리클럽에서…
1957년 공주중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10,11,12월 간 3개월분의 사친회비 일금 삼천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공주중학교사친회장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상단에는 '공중'이라는 표기가…
오태식이란 인물이 금 340원을 3년에 걸쳐 80원씩 분할 반제하는 장기정기대부로 담보물은 공주군 우성면 월미리 342번지에 위치한 답(畓) 1,033평이며, 연대보증인은 박기원이다. 차용금증서 뒤에는 담보물을 확인하는 소화 8년(1933) 3월 23일에 발행한 담보물…
1990학년도 우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교육과정에 대한 추진계획서이다.
전 공주교대 총장 및 김영배, 안승주 교수와 함께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했던 박용진 님이 작성한 초고이다. 표지 및 목차 등은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기로 작성한 부분에 교정부호나 붉은 펜 등을 이용하여 퇴고를 실시한 흔적이 남아 있다.
94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은 제 43회 백제문화제의 예산결산 승인건 , 발전방안 , 추진계획안 , 예산안에 대해 수록된 회의자료 / 회의요약 , 백제문화선양위원회 참석명단 수록
영명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받은 개근상장이다.
1910년대 어느 여름 날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1967.02.25, 공주문화원 이관용 원장이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1개월 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향한 것을 기념하여 보고강연회를 개최했다. 당시 일반인과 가정주부 대상으로 나뉘어 진행한 강연회는 '오늘의 일본 사회 문화 교육 발전상'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삼평 연구회에 관한 정관 서류이다. 식순 및 회칙 등에 관한 안건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백제문화제의 기본계획과 행사종목별 운영계획 및 행사준비 , 행사장 시설 및 홍보계획 및 평가를 수록함
공주시 공문이다. 공주시 지명위원회 위촉계획, 공주시 지명위원회 조례, 위촉동의서 양식이 첨부되어있다.
1990.12.07,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62차 임시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임총에서는 1990년도 제1차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 심의가 이뤄졌다.
연도미상의 박문수 집터에 관한 원고이다. 공주군지(1957년 간) 공신조에 '공주읍 교동에서 거주하였다'라는 기록과 현 교동(校洞) 지번52와, 지번62-1의 2필지로 박문수 집터를 추정하고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작성한 자필메모이다. 메모의 제목으로 '낙수(落穗)'라고 쓰고, 공주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사항을 기재해 두었다. 낙수란 농사지은 것을 거두어간 뒤 땅에 흘리고 쳐진 나머지 낟알 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평소 윤여헌 교수가 생각해 왔던 바로잡아야 할…
1963.03.29, 공주문화원 주최로 문화원 내 전시실에서 진행된 제93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감상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전원교향곡'이었으며, 참가 회비로 20원이 징수되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이다. 일본의 한국어 학당과 한국어 일본어교실간 교류회를 위한 쓴 인사말의 초안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