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1910년대 초반 '조선의 명소(朝鮮名所)'라는 시리즈로 발행된 사진그림엽서 중 계룡산 남매탑을 배경으로 제작한 것이다. 본래 명칭은 청량사지 7층석탑과 5층석탑이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찰지이다. 남매탑 앞에 제복과 양복을 입은 사람과 흰색의 전통 한복 차람의…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1956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740환을 청구하는 내용이다. 영수증 하단에 의하면 수업료, 호국단비, 사친회비 등의 비목이 인쇄되어 있으나 4,5월 사친회비 명목으로 청구하고 납입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계룡국민학교 제50회 졸업생 김순준님의 4학년 아동발달상황통지표 및 수료장이다. 교과학습발달상황 및 출석사항, 행동발달상황, 신체발달상황과 가정으로 보내는 통신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수료장은 4학년 과정을 수료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1970년 2월…
2016년 4월 15일에 발표한 국립공주박물관 2016년도 주요업무 현황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일반사항
2. 2015년도 주요업무 실적
3. 2016년도 주요업무 계획
연도미상의 서적 '駐韓日本公使館記錄(주한일본공사관기록) 1'을 복사한 자료이다. 앞에 작은종이로 공주 당시 전봉준 휘하의 농민군 공격로 약도와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청일전쟁의 시대적 흐름이 담겨있다. 서적복사본은 동학농민군의 실태와 전투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자필로 작성한 에 관한 메모이다. 공주인의 다섯가지 덕목과 한국인의 공통적인 인간상에 대하여 고찰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영산전불량축원책'에 관한 것이다. 마곡사 영산전을 새로 중수하고 올린 축원문이다.
1962.03.30, 다방 고완에서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82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당시 감상곡으로 시베리우스의 '도네라의 백조'와 배토벤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기증자가 작업인부에게 지급한 판공비와 각종 물건의 가계부로 추정된다.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 중동 성당 부설 마리아 어르신대학에서 주관한 '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성경 2년 과정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주민이 수료하여 해당 증서를 지급하였다.
윤여헌 교수가 사카이 카츠하루(酒井 勝治)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안문이다. 공주회의 회원이자 공주에 많은 자료를 기증하였던 아메미야(雨宮)의 사망소식을 들은 날(2009년 7월 30일) 매우 황망해 하며 쓴 편지이다. 그러면서 아메미야를 알게 된 경위를 기재하고,…
공주시 환경보전자문위원회 위원 임기만료에 따른 연임 의견 및 위원 추천 공문
1933년 충남도청 내 건물에서 개교한 공주공립농업학교가 학생들의 실습교육을 위해 1938년 장기면 신관리 196번지(現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 부지)에 이전했을 당시 교사의 모습이다. '사적의 공주'라는 시리즈로 발행된 이 사진그림엽서 속 모습 그대로 공주공립농업학교는…
1912년 앵산공원 부지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가옥과 그들이 건립한 현재의 영명학교 부지의 모습이다. 충남도청 앞 관아대로만 지붕이 다른 일제식 건물이 들어서 있을 뿐, 공주시가지는 그 구획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제민천 하류도 본래의 자연적인 저습지…
1965.06.11부터 10일간 공주문화원 후원으로 공주고등기술학교에서 진행된 요리강습회 안내문이다. 1965년 요리강습회는 서울 요리계의 제1인자로 불리는 김향수 여사가 초빙되어 강의를 진행했다.
1911년 4월 3일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 일대에서 진행된 신무일왕 탄신기념 식목행사 모습이다. 좌측의 동산은 현재의 영명중고등학교 부근 유관순 열사 동상이 위치한 곳으로, 나무를 심는 인부의 모습과 함께 취원루로 추정되는 누각의 지붕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1994년 8월 23일 송재■ 이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는 안부편지이다. 한상옥 교수의 안부를 물으며 거처를 옮겼으니 그 곳으로 많은 소식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