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웅진백제의 중국남조와의 관계에 관한 메모이다. 기록에서는 남조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자기와 청자양형기, 전문도기를 제시하였으며, 웅진 백제시대에 남조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기록해 두었다.
1964년 공주문화원에서 문화원 청사 신축을 위한 기공식 행사를 진행하면서 배포한 초청장의 모습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2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공주지역민주단체협의회 회지이다. 회지의 타이틀은 4천만의꿈과 희망 민주정부라 하였다.
1966년 반포국민학교에서 제6학년 남신현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장으로, 전교 어린이회 운영에 공이 현저하였으므로 이를 표창한다는 내용이다.
1928년 반포공립보통학교에서 임월수 학생에게 수여한 수업증서이다. 수업연한 4개년의 보통학교 중 1학년의 과정을 수료하여 이를 증명한다는 내용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8년 3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1958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전(全)기분 제2종토지수득세인 대지세(垈地稅) 납세고지서이다. 일금 삼백구십삼원을 단기 4291년 5월 25일까지 면사무소에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서류2 : 알림(최두문 교수 정년퇴임식 관련)
계룡국민학교 제43회 졸업생인 신갑승님의 5학년 어린이학교생활통신표이다. 행동발달상황 및 교과학습상황, 출결상황, 신검상황, 특활상황과 가정통신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1957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부가세 등에 대한 영수증이다. 원래 용지에는 부가세라고 인쇄되어 있으나 '90년도제1종토지수득세'라고 자필로 기재하였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8년 공주에 주둔하며 공주사람을 보호하던 명나라 세 장수 제독 이공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에는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서로 다른 정보가 있다. 앞면에는 백제문화의 특징을 일본문으로 기술했다. '무령왕은 중국 양과의 교류를 통해, 발달한 선진국의 문물을 수입한 일은 이미 기술했다'로 시작하며, 전체적인 내용은 무령왕릉의 특징이다. 뒷면에는 일한교류문제를 기술했다. '교류의 목적은 상호…
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계룡국민학교에서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의 4학년 수료증서 및 성적통지표이다. 수료증서는 국민학교 4학년 과정을 수료하였음을 증명하는 내용과 교장선생님의 성함과 직인이 찍혀있다. 성적통지표의 경우, 교장/교감/담임선생님의 성명 아래로, 각 교과목의 점수와 출결일수 및…
일본 사가현 가라츠시의 무령왕교류 친제이쵸(鎭西町) 실행위원회가 제50회 백제문화제를 맞아 2004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공주시를 방문하기 위해 공주시에 보내는 참가 요청 공식 문서이다. 일, 참가자명단, 협의내용, 일정표가 적혀있다.
재판기록 열람등사 청구서 양식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는 1966년 초까지 공주읍 내에 거주하는 인물이 납부한 기금 명세서이다. 각종 기관과 개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으며, 미수자의 명단도 함께 기재되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영규대사 관련한 기록이다. 일반에서 영규대사로 불려지는 것을 기허당대사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작성한 글의 초고로 추정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규대사 → 기허(기허당)대사로
공산지 인물편 중 충신조에 보면 이렇게 소개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