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학교의 우리암 교장 부부와 그의 아들 우광복의 모습이다.
1940년 11월 24일 강제출국을 당한 우리암 교장의 출국을 배웅하는 장면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선교사들을 추방하였다. 우리암 교장이 떠난 후 영명실수학교는 1942년 3월에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1937년 10월 15일 영명학교 개교 30주년 행사에서 설립자 우리암 교장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동상은 1940년대 초 일제의 공출에 의해 없어졌고, 1985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1930년대 영명학교에서 예배 인도하는 우리암 교장과 학생들의 모습이다.
영명학교 설립자 우리암 교장 가족이다.
1930년대 우리암 교장의 집무 모습이다.
1965년 공주영명중 재학생 중 일부가 학교 교사를 배경으로 촬영한 졸업사진이다. 학생 뒷편의 오른쪽 건물은 1921년 10월 미감리회에서 지원하여 건축한 영명남학교 교사이다. 광복 이후에는 영명학교 내 다른 건물과 함께 영명중고등학교 교사로 활용되다가 지난 2002년…
2020.07.02, 공주학아카이브 현재기록화 작업의 일환으로 공주 원도심 봉황산 자락에서 촬영한 전경사진이다.
1917년 충청남도 도세일반 전면부에 수록된 도내 각지역의 대표사진 중 공주시가 전경사진이다. 오늘날 선교사 묘역 부근에서 공주영명학교와 3.1중앙공원, 시가지, 공산성, 금강 방향을 촬영한 것이다. 본 자료의 제목에 따르면 '공주시가지와 산성공원을 바라본 모습이고,…
1957학년도 공주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중 일부가 선교사가옥을 배경으로 촬영한 졸업사진이다. 재학생 뒷편으로 나무에 가려진 선교사가옥의 모습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촬영 위치로 보아 오늘날 금학초등학교 북동쪽 언덕부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 11월 우리암교장이 강제출국 되기 전 교사, 학생들과 찍은 송별사진이다. 일제는 1930년 중반 이후 기독교계 학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고, 1940년에 이르러 전쟁이 가시화되자 일제는 국내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을 강제출국시키는 조치를 시행하였다. 우리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