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1962년 공주중학교에서 학생에게 발행한 보건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천원을 청구 및 영수하고 있는데, 내역에 '도서비'라고 적힌 부분에 밑줄을 긋고 '보건비'라고 정정하였다. 영수받은 학생의 학년과 반, 번호, 성명은 우측에 세로로 기재되어 있어며 영수증 상단에…
공문번호:후쿠오카 20800-D000041, 수신:장관(문협,문홍,아일),문관부,충청남도,공주시,무령왕네트워크협의회, 발신:주후쿠오카총영사. 사가현(佐賀縣)"무령왕교류 친제이마치(鎭西町)실행위원회" 관계자가 표제 기념비안을 송부하여 이를 한국측에 전달하고 관계기관과…
1960년대 말~7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곡사 관광기념 엽서 시리즈 중 마곡사 다보탑과 대광보전의 모습이다.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에 대한 세부행사추진계획을 수록함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제 22회 백제문화제의 인사말과 집행위원명단, 일별 행사를 수록함
1992년 공주문화원 이관용 원장이 통일시대에 대한 준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부터 수여받은 대통령 표창장이다.
1993.02.26,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66차 정기총회 속기록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1992년도 사업실적 및 세입세출 결산안 심의와 1993년도 사업계획 및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가 이뤄졌다.
1960년대 말~7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곡사 관광기념 엽서 시리즈 중 마곡사 대웅보전의 모습이다.
1992년 8월 공주 금성여자고등학교 이사장 김윤태가 일본 누마즈북로타리클럽과 교류를 위해 일본에 방문하여 일정을 나눈 후에 진행한 인사말의 원문이다. 김윤태는 인사말에서, 일본국과 치르는 국제문화교류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인의 일이라 하면서, 선친의…
1955년 농지개혁사업특별회에서 발행한 상환통지서, 수납통지서 및 영수증서이다. 고지서에 의하면 농지개혁법 제13조 및 시행령 35조에 의해 단기 4287년 11월1일까지 금융조합에 농지대가개정 상환액을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납부통지서 및 영수증은 공란으로 남아…
1972년 가을에 개최될 예정이던 공주 관내 친목배구대회는 우천 등의 영향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1973.05.13 공주고등학교에서 제33회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여 본 자료에서 개최에 관한 각종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본 자료에는 배구대회 개최와…
계룡국민학교 제43회 졸업생인 신갑승님의 5학년 어린이학교생활통신표이다. 행동발달상황 및 교과학습상황, 출결상황, 신검상황, 특활상황과 가정통신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공주문화원 우편봉투
윤여헌 교수가 공주향교 양사재 거접절목과 명륜당 중수기를 해석하고 자필로 쓴 해석문 초안이다. 마지막 장에는 수령칠사에 대한 설명과 반계수록의 문장이 발췌되어 있다. 그는 이 자료 해석을 한 후,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 간행한 웅진문화 제 6집에 '공주향교부설…
1911년 공주시내 일원에서 진행된 신무일왕 탄신기념 식목행사의 모습이다. 본 자료에서 일제 순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작업을 감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흥륭사의 유래에 대한 글이 A3용지를 반을 접어 양면으로 있다. 흥륭사는 스이코 덴노 시절, 임성태자가 창건한 절이라 전해진다. 제3쪽~제4쪽(제2장)은 빙상산 흥륭사에 대한 글과 함께, 오우치 문화의 귀중한 유산을 지키자는 구호도 적혀있다. 제4쪽과 제5쪽…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50주년 기념집 - 웅담조 인터뷰(박순미)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 역사 관련한 기록이다.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은 감영과 진영이며 그 휘하 관리와 제도에 대한 설명이다.
2000년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의 명의로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김영철 님에게 발행된 6.25참전용사증서이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여 그 명예를 선양하기 위하여 증서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증서와 함께…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풍마동 다보탑의 모습이다. 마곡사의 정전인 대광보전 앞 마당에 위치한 마곡사 5층석탑으로 금동제 상륜부는 라마식 보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재의 위치보다 대광보전에 더 가깝게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