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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07.11, 공주문화원 주최로 문화원 내 전시실에서 진행된 제96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감상곡으로는 전주곡 '독신의 오후'와 고향 묘사곡 '바다', 현대음악인 전자음악 3곡이 연주되었다. 아울러 본 감상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회비 20원을 납부해야했다.
2000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일제강점기 마곡사 앞을 흐르는 희지천에서 바라본 마곡사 전경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는 난간도 없는 나즈막한 돌다리이며, 경전 주변에는 돌담장이 둘러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충청)감영고 관련 메모이다. 전면에는 공주개영시기와 공주감영의 위치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데, 한글파일로 작성되기 전에 자필로 먼저 작성된 것이다. 후면에는 백제시대의 웅진과 인조대의 파천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계룡국민학교재건기성회에서 단기 4291년도 계룡국민학교재건비로 일금 천삼백원을 수령하였다는 내용의 영수증이다. 자료 우측에는 납입한 진상옥님의 성명과 계룡면 유평리가 기재되어 있으며, 도장 절반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통지서와 영수증을 분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1,500환을 납입한 것을 증빙하고 있다. 졸업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졸업비목으로 학교에서 해당 금액을 영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은 금액 상단에…
1964년 공주군체육회에서 주최한 제1회 군내 국민학교 종합체육대회에서 유구국민학교가 남자 체조부 종목 2등의 성적을 거두어 받은 상장이다. 상장 우측 상단에는 '국민학교 유구팀'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계룡산으로 향하는 현재의 동학사 매표소 부근 길목에서 바라본 계곡과 산능선의 모습이다. 계룡산 정상부에는 삼불봉과 관음봉 등 웅장한 봉우리가 있다.
금남고속에서 정부대전청사와 수도권 각 지역을 오가는 버스를 운행하였는데, 본 자료에는 해당 버스노선 별 시간표와 요금이 담겨있다.
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810191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로, 공주 우금치고개에서 벌어진 동학농민전쟁 우금치전투의 전개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는 석가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이 모셔진 대웅보전과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광보전이 존재한다. 대광보전 마당에는 라마교 양식의 풍마동이 올려진 5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탑의 위치가 희지천 쪽으로 남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위치해있던 충청남도 도청 정문을 배경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문루의 명칭이 '포정사'에서 '금남루(錦南樓)'로 개칭되었다. 이후 1928년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금남루 옆 2층의 콘크리트 골조로 건축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우측에는 보호자명과 아동명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으나, 보호자명은 작성하지 않았다. 납부금은 120환인데, 소맥 몇 두 라는 항목을 지우고, 수기로 금액을 작성하여 도장을 찍었다.
1954년 대한국경원호협회 공주군계룡면분회에서 발행한 전기분 군경원호회비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으로, 일금 팔십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상단에 '영수증'과 함께 군(軍)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1961년 공주중학교 제1학년 입학자 전형시험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입학시험합격증이다. 합격증은 공주중학교장의 명의로 발행되었으며, 문서 상단에 출신국교 및 수험번호, 생년월일, 성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남궁화가 1964년 4월부터 1966년 5월까지 쓴 보덕일지로, 울진과 대구에 있을 때 쓴 것이다. 백지에 수기로 일지의 각 칸을 직접 만들어 내용을 기입하였다. 일지의 첫 부분에는 친구와 지인의 사진,측량활동기간의 사진 등도 수록되어 있으며, 년간 달력을 별도로 오려…
이 문서는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법학 시험문제지이다. 전체 20문제이며 5지선다형으로 문제는 헌법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다루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영규대사 관련한 기록이다. 일반에서 영규대사로 불려지는 것을 기허당대사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작성한 글의 초고로 추정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규대사 → 기허(기허당)대사로
공산지 인물편 중 충신조에 보면 이렇게 소개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