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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4년 5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백제문화선양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행사종목 변경, 예산조정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참석대상자 명단 수록
1980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한 교사 표창장으로, 우성중학교에 근무하는 오재봉 씨에게 수여하였다. 제2회 학생과학 발명품 전시회에서 은상을 수여받은 '편리한 책꽂이' 작품을 우수작품으로 입상하게끔 지도하여 공로를 치하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공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였던 故 유보근씨가 공주의 지정문화재 사진을 직접 찍어 만들려고 했던 공주문화재 도록의 초고본이다. 이 도록에는 약 210여점의 사진이 필름의 형태로 각 유적마다 1~4장까지 부착되어 있다. 또 각 유적에 대한 설명은 충청남도에서 발행한…
2007.11.23.자 조선일보 신문 일부 복사본이다. '故 이방자 여사의 외조카 이케노보 야스코씨 방한'이라는 기사 소제목으로 '일본문화의 뿌리인 백제문화 배우러 왔어요'라고 기사 대제목이 쓰여 있다. 그녀는 당시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의 초청으로 공주와 부여를 찾았다.
송산리고분군 제6호 무덤의 입구 연도 모습이다. 송산리 6호분은 전축분의 형태로 그 입구와 무덤길의 모습이 타 백제계 무덤과 다르다. 또한 6호분이 1932년 공주고등보통학교 교사 가루베지온(經部慈恩)에 의해 발굴된 점에 비춰볼 때, 이 엽서는 1932년 이후에 발행된…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취리산 삼국회맹지 관련 메모이다. 삼국사기의 문무왕조를 인용하여 취리산에서 삼국이 회맹하였다는 사실을 적어두었으며, 후면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갈등 요인, 그리고 웅진도독부의 설치와 전후의 참상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기재되어 있다. 한편,…
1961년 정안국민학교 제2학년 강성만 학생의 품행단정을 표창하는 상장이다.
1989년 공주문화원에서 진행한 내 고장 사랑 및 경노효친사상선양 백일장에 참여한 학교명단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로, 특별한 일관성이 없는 메모군이다. 앞면에 수원사지 관련 내용, 공주로터리클럽의 역사, 누마즈로터리클럽과 결연한 행방, 홈스테이 등이 적혀있고, 뒤에는 박물관 관련 메모가 있다.
1999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에 대한 행사계획안으로 행사에 대한 목표와 방침, 추진순기, 개선발전사안, 지역별행사계획, 도지원계획, 경제점 및 대책을 수록함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2년 4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윤여헌 교수가 작성한 동학농민운동 관련 기록이다. 윤여헌 교수는 동학혁명으로 명명하였으며, 배경과 과정 등 전반적인 내용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 전문은 모두 일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메모지로 사용된 종이는 공주시 CI가 적힌 메모지 2장과 A4용지 5장으로 이면지를…
연도미상의 대통교에 관한 원고이다. 대통교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있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58주년 기념집 - 기억의 습작조 인터뷰(유승광)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이다. 일본 누마즈시 누마즈중앙고등학교와 공주 금성여자고등학교 간의 교류에 즈음하여 방문단을 환영하는 환영사로, 당시 공주로타리클럽 최병구 회장을 대신해 윤여헌 교수가 일본어로 환영사를 미리 작성해 놓은 것이다.
윤여헌이 자필로 쓴 메모로, 어떤 소설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메모 왼쪽에 페이지를 별도로 표기하고 바로 이어서 본문을 그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