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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본정(本町), 즉 지금의 중동 무령로의 옛 모습이다. 공산성에서부터 남북으로 길게 뻗은 대로로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나있던 것을 토대로 더욱 확장하여 길 양편으로 여러 상점이 들어섰다. 멀리 공산성 쌍수정이 희미하게 보인다.
기증자가 공주대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공주의 전통마을에 대한 기초조사자료가 담겨있는 자료집이다. 본 자료에는 문서류-박물류 등의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산재해있다.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개황과 행사일정 , 행사종목별 추진계획 , 홍보 및 축제 조성계획 , 일정별 계획 , 협조 및 행정사항 , 백제문화제 연혁을 수록함
1982년 공주천주교회 주임신부가 발행한 임명장이다. 공주천주교회 중장공소의 김영철 님을 공소 부회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마곡사 고방에 소장된 '공주군태화산마곡사심검당공요번와기'에 관한 것이다. 본 카드의 유물은 마곡사 심검당을 중수한 기념으로 제작되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일본내 백제와 관련된 내용을 메모 한 것이다. 구마모토(熊本)와 카라츠(唐津), 현해탄 등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대광보전에 걸려있는 '공주지태화산마곡사심검당중건기'에 관한 것이다. 1856년에 기록된 마곡사 심검당 중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심검당은 갑인년(1854년 추정) 09월 16일에 화마로 건물이 무너졌다. 심검당 중건을 위해 관찰사 심의면이 정조…
1960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전(全)기분 가옥세 등의 영수증이다. 일금 오백오십원을 영수하였는데, 각각 가옥세 및 부과세 상세 금액을 적는 란은 비어 있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1990년 공주전화국에서 주최한 '1990년도 전화바로쓰기 글짓기 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4학년 이영호 학생이 장려상을 받은 내용의 상장이다.
1972년 4월 서상규의 장남 서병래와 김두환의 장녀 김기옥이 공주군 우성면 쌍신리 신부자택에서 결혼한다는 내용이 인쇄된 청첩장이다. /…
1996년 충청남도 공주교육청에서 주최한 '공주시 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공주금학초등학교 합창부가 금상을 받았다. 교명하단에는 지도교사명도 기재되어 있다.
1953년 충남농지개혁특별회에서 발행한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이다. 농지개혁법 제30조 및 시행령 35조에 의해 단기 4286년 7월 15일까지 금융조합에 납부할 것을 안내하며, 기한 내로 납부하지 않을 시 농지개혁법에 의해 해당 농지의 반환을 단행할 것을 통고한다는…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행사에서 학부형 대표가 낭독한 제막식사의 내용으로, 정안국민학교를 위해 몸과 마음을아끼지 않았던 원종국 회장의 업적과 고귀한 뜻을 기리는 내용이다.
1951년 계룡면 유평리 주민이 보관하고 있던 영수증으로, 일금 삼천칠백원을 영수한다는 내용이 연필로 휘갈겨져있다. 글자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세로읽기 방식으로 쓰여있으며, 성명 하단에 도장을 찍었다.
계룡국민학교 제51회 졸업생 오광택님의 졸업장이다. 본교 6개년 과정을 졸업하여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서기1973년 2월 19일자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하였다.
1936년 유구금융조합의 거치예금통장이다. 예금의 입출금 내역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통장의 전면에 삽입된 삽화가 오늘날 통장과 다른 디자인을 보여준다.
백제문화선양위원회 위원장의 주재로 행사 종목조정안 , 추진계획안 , 예산조정안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회의요약 , 백제문화선양위원회 참석상황 수록
1958년 반포국민학교에서 1학년 1반 김회천 학생에게 수여한 학업우수상장으로, 학업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이를 표창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상반정(現 봉황동 일원) 부근에 위치한 상반여관이다. 당시 공주의 대표적인 여관으로 시찰단 등 주요인사가 머물기도 했다. 엽서 중간에 상반여관 입구의 모습과 측면을 후편집하여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