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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정안국민학교장의 기념사로 참석자 내빈에 대한 감사와 반백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정안국민학교의 발전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8년 공주정안우체국에서 발송한 내용증명의 일부이다.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에 대한 사업예산현황과 연도별 예산대비표, 식순별 세부 행사진행에 대한 설명을 수록함
백제문화와 일본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윤여헌 교수가 1994년 9월 9일 야마구치현 교육회관에서 강연한 글이 제1쪽부터 제9쪽까지 있고, 마지막 쪽은 이 강연을 소개한 일본 서경신문의 글이다. '윤여헌 씨(한국 공주사범대학 명예교수) 강연에 감동하다'라고 가운데 크게…
1973.11.23, 공주문화원에서 미국 공보원의 후원을 받아 국제경제의 동향에 관한 교양강좌했다. 본 자료는 해당 강좌 전에 발행한 초청장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0년 1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1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1960~7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갑사 석등사진 엽서이다.
1967.02.25, 공주문화원 이관용 원장이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1개월 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향한 것을 기념하여 보고강연회를 개최했다. 당시 일반인과 가정주부 대상으로 나뉘어 진행한 강연회는 '오늘의 일본 사회 문화 교육 발전상'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삼국유사 관련한 메모이다. 삼국유사 권3 원종흥법염촉멸신조 신라 법흥왕대의 불교 융성을 기록한 내용 중 「대통원년 정미년에 양제를 위하여 웅천주에 창립하여 대통사로 이름 지었다.」 등의 내용을 기재하였다. 이 밖에 대통명문와 등 기와 관련…
1991학년도 제2학기 출석수업통보 및 강의시간표
1989년 공주신보 창간과 관련한 인사장과 영업안내, 신입사원모집 공고문이다.
1952년 공주중동국민학교에서 발행한 1951년도 성적통지표와 수료증서이다. 성적통지표는 교장, 교감, 담임과 아동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고 각 과목별 점수와 석차, 가정에서 학교로 발송하는 통신, 출석 일수 및 신체상황 등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수료증서는 국민학교…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갑사구곡에 대한 메모이다. 주요내용으로

' 구곡시의 효시는 송나라의 주자가 읊은 무이구곡가에서 유래하였는데 무이산의 원림을 경영하면서 읊은 시문에서 유래하였다. 율곡 선생은 고산구곡, 퇴계선생은 도산십곡, 우암 선생은 화양구곡이…
1955년(단기 4288) 3월 31일 공주여자중학교에서 2학년 차봉선에게 수여한 개근상장이다. 앞면 우측에 학년 및 성명이 기재되고, 본 학년 동안 개근하였기에 본 상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상단에 할인(割印)과 관인이 찍혀있다.
공주의 맥(公州의 脉) 범례(凡例)에 대한 윤여헌의 검토본이다. 참고문헌, 목차가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이다. 공주향토연구회가 일본의 공주회와 교류하면서 회장으로서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이다. 본문에 의하면 공주향토문화연구회와 공주회와의 금후이후의 교류를 제안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번호 500011710 건과 같은 내용으로 이…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는 1966.06.08 준공식이 진행된 후 모금한 신축기금과 지출된 공사비 내역을 총 정리하여 1967년에 작성한 명세서이다. 신축을 위해 모금한 금액보다 지출액이 더 큰 것을…
1975년 공주문화원 명의로 발송된 국기 하강식 실시 안내문이다. 매일 17:30분에 애국가를 송출하며 국기를 하강하는 행사는 오늘날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는 당시에 10월유신 이후 이뤄진 애국심 고취와 전국민 총화단결체제의 산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