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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244건
1967.07.03, 공주문화원 이관용 원장이 지난 06/14에 진행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주에 거주하는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보고강연회를 개최함을 알리는 초청장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기증자의 징집을 연기해줄 것을 신청하는 학교장 명의의 징집연기원이다.
1958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수입이자영수증이다. 단기로 기재된 날짜 밑으로 영수받는 자의 성명이 적혀있다. 전표 가장 우측에는 세로로 금액을 기재할 수 있고, 대부(貸付)종별과 연월일, 산출원금(算出元金)과 연월일 및 일수, 이율과 이식(利息)을 차례대로 적는 칸이…
1955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신입생에게 발행된 영수증서로, 수업료와 사친회월회비가 3개월에 각각 1,350환과 2,100환이 청구되었다. 영명고등학교 구좌에 납입완료하였다는 것을 공주금융조합에서 증빙하고 있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번호, 이름은 가장 우측에…
1922년 공산지 수록 공주시가지도이다. 출처미상의 지도 복본으로 당시 공산지와 공주 시내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1951년 공주읍에서 발행한 국책교환권 일백원이다.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단기 4285년 6월 30일 기한 내에 공주읍에서 교환할 수 있다. 당시 중앙정부에서 발행한 국채와 마찬가지로 공주읍에서 행정집행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1.5.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월례회 자료이다. 제목은 윤여헌 교수의 친필메모로 쓰여져 있다. (1)米芾(미불,1051~1107) (2)趙孟부(조맹부,1254~1322) (3)董其昌(동기창,1555~1636)의 연혁과 서체(글씨)의 관해 설명하는 글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웅진백제의 중국남조와의 관계에 관한 메모이다. 기록에서는 남조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자기와 청자양형기, 전문도기를 제시하였으며, 웅진 백제시대에 남조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기록해 두었다.
2000년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의 명의로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김영철 님에게 발행된 6.25참전용사증서이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여 그 명예를 선양하기 위하여 증서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증서와 함께…
2007년 아메미야(雨宮)가 그의 부친이 소장하던 골동품 일부를 가지고 윤여헌과 만나게 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보낸 편지이다. 아메미야는 자신의 부친이 앵산공원 아래에 살면서 평소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전시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하였다. 그러면서 전쟁이…
계룡국민학교 제46회 졸업생 오순택님의 졸업장이다. 본교 6개년 과정을 졸업하여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서기1968년 2월 14일자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하였다. 졸업장 상단 좌측에는 본적도 기재되어 있다.
전체 4장이다. 앞 두 장(총 3쪽 분량)은 한국 공주 금성여자고등학교가 일본 누마즈세이카고등학교(현 누마즈중앙고등학교)로부터 받은 서신들이다. 한일교류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보자는 글이다. 제3장(제4쪽)은 1992년 8월의 서신인데, 누가 누구한테 쓴 것인지 알 수…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장성한 메모로, 3가지 내용의 메모가 적혀있다. 감사장 관련 일자와 사무장의 연락처, 일본 실업자 집단에 대한 생각을 메모한 것, 그리고 농어, 광어, 방어, 전어의 어류의 일본어 표현도 적혀있다.
1972.04.20에 진행할 공주문화원 제30차 이사회 개최 통지문과 참석확인서 양식이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의 정확한 생산연도는 알 수 없으나 03/25 기준으로 작성된 수입액과 지출액, 잔액의 내역이 적혀있다.
1972.02.10, 공주문화원 생활관에서 진행한 제10차 정기총회 속기록이다. 회의에서는 1971년도 사업실적보고를 진행하고 동년도 세입세출 결산심의했다. 나아가 1972년도 사업계획서와 세입세출 예산서도 심의했다.
수부(受附)와 등기 목적, 원인일, 권리자의 성명과 주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등기제에 의하면 소유자 이전 신청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등기제를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등기제 대신 등기신청을 마친 문서라는 뜻으로 '등기필'로 바뀌었다.
파평 윤씨 시조부터 자신의 대인 36대까지의 직계가 적혀있다. 물리적으로 묶인 것은 아니지만 자료군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