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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가 공주의 화산사와 대도사에 대한 기초조사자료집을 제작한 것이다.
1957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4,400환을 납입한 것을 증빙하고 있다. 11,12월의 호국단비 및 사친회비를 영수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은 금액 상단에 적혀있다.
1963.02.04~13 동안 공주문화원에서 진행된 요리강습회의 개최 안내문이다. 등록금 100원을 납부하면 매일 실습이 가능했으며 총 3개의 반으로 나뉘어 강습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직장에 근무하는 여성을 위해 야간교실도 존재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1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재직기간합산 승인사항 정정 통보
1997.3.30.일자 공주사랑시민모임 3차 답사인 답사자료이다. 주요 수록내용으로 1.어원의 해석 2.곰사당(웅진당,웅진용당) 3.웅진도독부 4.복원한 충청감영,포정사 및 공산아문 동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1년 공주고등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동창회 입회비로 일금 오백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당시 공주고등학교 동창회장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고대 한일관계와 관련된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일본 쇼토쿠 태자, 요메이 덴노, 긴메이 덴노의 출생에 관한 작은 메모, 그리고 일본의 불교수용에 대한 메모가 담겨 있다. 한편, 메모지로 사용된 종이는 A4이면지로 공주로타리클럽에서…
기증자가 이어령 박사 인터뷰를 발췌한 것이다.
어떤 일을 통해서 한일의 차이를 느꼈습니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한류'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적혀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십환정을 사친회비 7월분으로 청구하였다. 단기 4286년 7월 24일에 발행하였으며, 발행한 담임선생님과 아동의 성명이 가장 하단에 적혀있다. 계룡국민학교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로 발행되었다.
2006.11.21.자 공주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강의자료이다. 1페이지에 용산구곡(상신리계곡): 翠陰權重冕(취음권중면 1855~1936) 1곡~9곡까지의 제목과 갑사구곡: 碧樹尹德榮(벽수윤덕영 1873~?) 1곡~9곡 제목, 금난구곡(정안면 대산, 월산,…
1947년 반포국민학교 제1학년 서민식 학생의 성적통지표이다. 겉면에는 연도와 학년, 아동성명이 적혀있고, 내지에는 학기별 성적이 갑,을,병,정,무로 등급을 나누어 매겨져 있으며 출석현황과 신체현황 등을 적을 수 있는 란도 있다. 성적통지표 뒷장은 학년 수료증으로…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영산전 편액에 관한 것이다. 영산전의 편액은 세조의 친필 편액이라 추정되고 있따.
일본 가라쓰시의 물류회사인 유한회사 우정환의 대표이사인 우라마루마사루(浦丸護)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온 연하장이다. 인쇄된 엽서형태로 우라마루가 특기한 내용은 없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대광보전 편액에 관한 것이다. 대광보전 편액은 표암 강세황의 글씨로, 1788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현판의 좌측 하단에는 표옹이라고 찍힌 낙관이 존재한다.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금강철교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1933년 11월 완공된 금강교는 폭 6m에 길이 약 500m의 규모였다. 준공식 당일에는 약 700명의 손님을 비롯해 수많은 공주사람이 모였다. 당시 주민이 자발적으로…
윤여헌이 자필로 작성한 메모이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국문과 일본문으로 쓴 것이다. 총 5가지 사항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물은 소중한 자원으로 아껴씁시다.
2. 사용하신 물건은 있던 자리에 갖다 놓습니다.
3. 몸을 씻은 후 탕에…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내 강선대의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강점기 본정(本町), 즉 지금의 중동 무령로의 옛 모습이다. 공산성에서부터 남북으로 길게 뻗은 대로로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나있던 것을 토대로 더욱 확장하여 길 양편으로 여러 상점이 들어섰다. 멀리 공산성 쌍수정이 희미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