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2009년 국립공주박물관의 결과 보고서이다. 주요내용으로는 1.박물관특성을 살린 특화된 전시서비스 확대 2.국내외 문화교류 네트워크 구축과 국제역량 강화 3.과학적,체계적 유물관리를 통한 문화재 관리강화로 구성됐다. 다음 장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및 서비스 향상…
1963년 공주중학교에서 발행한 납부금영수서 및 세입금원부철이다. 표지에는 학생의 성명과 학년, 반, 번호가 적혀있으며 '납부금은 매기 초 20일까지 납부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내지에는 수업료, 학생회비 등의 명목과 금액이 작성되어 있다.
재판기록 열람등사 청구서 양식
백제문화제의 기본계획과 행사종목별 운영계획 및 행사준비 , 행사장 시설 및 홍보계획 및 평가를 수록함
작사,작곡 모리토시히코(森敏彦), 편곡 하마다다케시(濱田訓)이 지은 '태양이 떠오르는 가카라시마'이다. 1~10장인 한 묶음은 악보로만 구성되어 있다. 11장은 악보와 가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12장은 가사만 수록된, 국일문혼용체이다. 13장은 작사작곡가 모리토시히코의…
1987년 3월 1일 대전일보사, 대전직할시 육상경기연맹, 충청남도 육상경기연맹이 공동 주최한 3·1절 기념 제15회 대전직할시 충청남도 내 고교대항 역전 경주대회에서 공주고등학교가 종합 5위를 차지하여 받은 상장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9년 8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일본 누마즈시에 살고 있는 아이카 토시오(秋鹿 敏雄)가 윤여헌 교수에게 다음 한메일로 보내온 이메일 편지이다. 윤여헌이 메일을 받고 별도로 인쇄하여 보관해 온 것이다. 토시오는 한글로 메일을 작성하였는데, 윤여헌 교수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풍마동 다보탑의 모습이다. 마곡사의 정전인 대광보전 앞 마당에 위치한 마곡사 5층석탑으로 금동제 상륜부는 라마식 보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재의 위치보다 대광보전에 더 가깝게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955년 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군사훈련비 영수증이다. 일금 삼백환을 군사훈련비로 영수한다는 내용으로 우측에는 고지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수증의 호와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성명 및 학년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공란으로 남아있다.
1956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2,800환을 청구하는 내용이다. 영수증 하단에 의하면 4월분의 수업료, 호국단비, 사친회비 등의 비목이 인쇄되어 있고, 이를 청구하고 납입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청구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번호 및…
원고지 : 상조회 소식 (2)
윤여헌 교수가 옮겨적은 한시의 해석본이다. 첫번째 쪽 말미에 기재된 '진주인 유당 정현보'를 보아 진주에서 활동하였던 근대 서예가인 정현보의 작품인 것으로 보이며, 열 수의 시가 기재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십폭병풍의 본문을 옮겨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번째와 세번째…
1998년 1월 11일 공주사랑시민모임에서 진행한 제5회 고적답사자료이다.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청양군 정산면, 목면에 대한 설명과 유적 소재지 지도가 실려있다.
소화 3년(1927년)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의 명의로 발행된 산림양여(讓與)허가증이다.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가척리 46번지 일대의 산림양도를 허가하였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마곡사 고방에 소장된 사명당대선사유정진영에 대한 것이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고방에 소장된 정혜사 극락전 칠성도에 관한 조사카드이다. 본 자료는 금호당 약효와 관련된 탱화로 금호가 수화사로 활동하던 초기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미르섬의 위치에서 공산성 공북루와 쌍수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에 기반하여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으로서 금강 연안 쪽으로 나루터가 있었다. 엽서 속 공북루 주변을 살펴보면 작은 전답과 함께 집 2채가 있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옮겨적은 서신의 본문이다. 도산이라는 호를 지닌 이가 받은 서신인 것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