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공주 신관동 주공아파트에 사는 화가 조병옥이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온 엽서이다. 엽서 뒷면에는 조병옥이 그린 알프스 연가 2라는 제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엽서에는 새해 복 많이받으라는 인사말이 기재되어 있다.
기증자가 공주엽연초생산조합에 엽연초를 수납하고 관련 대금 청구 및 영수증을 작성한 내역이다.
1957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수입이자영수증이다. 단기로 기재된 날짜 밑으로 영수받는 자의 성명이 적혀있다. 전표 가장 우측에는 세로로 금액을 기재할 수 있고, 대부(貸付)종별과 연월일, 산출원금(算出元金)과 연월일 및 일수, 이율과 이식(利息)을 차례대로 적는 칸이…
윤용혁이 주류성, 백강, 백제 최후 결전에 관한 토론회를 위해 작성한 문서다.
1975년 공주문화원 명의로 발송된 국기 하강식 실시 안내문이다. 매일 17:30분에 애국가를 송출하며 국기를 하강하는 행사는 오늘날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는 당시에 10월유신 이후 이뤄진 애국심 고취와 전국민 총화단결체제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미야모토요시타(宮本嘉太)가 보낸 공주마루쥬운송점 관련 사진 설명(写真のご説明) 의견서이다. 미야모토 요시타가 보낸 자료에는 조선자동차운수주식회사 마루쥬 운송점사진 3점과 회사 소유주의 사진이 수록되었다. 상단의 사진은 1939년 1월경 본정에 있는 마루쥬 운송점…
계룡국민학교재건기성회에서 단기 4291년도 계룡국민학교재건비로 일금 천삼백원을 수령하였다는 내용의 영수증이다. 자료 우측에는 납입한 진상옥님의 성명과 계룡면 유평리가 기재되어 있으며, 도장 절반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통지서와 영수증을 분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쌍수정 부근 성벽 위에서 제민천과 금강이 합수되는 금성동 일원을 바라본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좌측으로 정지산과 그 뒤 연미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곳은 본래 금강물이 드나들던 저습지였는데, 제방이 축조되면서 개간이 이뤄졌다. 그 뒤 몇 채 되지 않지만 민가가…
마트 쿠폰북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1953년에 발행한 수업료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청구한 수업료는 6월분으로, 일금 이만칠천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2009 계룡산 산신제 계룡산 산신제 및 오방 24계단 작두 굿 사진첩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으로, 현금 대신 백미 2되 5합을 영수하였다는 내용이다. 단기 4284년 12월 24일에 계룡국민학교 35회 졸업생인 진경희님에게로 발행되었는데, 당시의 학년/반인 1학년 1반도 기재되어 있다. 사친회의 회장과 이사의 직인도…
1966.08.19에 공주문화원 주최로 진행될 '학생클럽의 조직과 그 운영의 기술적 방안'에 관한 토론회 초청장이다. 본 토론회는 미 공보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될 예정이며, 미국 공보원 학생활동 지도 담당관 허철부 선생과 대학생 클럽대표 2명이 초빙된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이다. 주내용은 일본인인 기무라 씨와 한국인인 김씨가 여행 중 한국의 가장 높은 산과 일본의 가장 높은 산을 주제로 서로 물어보는 내용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2012년에 작성한 보고서다. 총 31쪽에서 17쪽만 존재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지역연계프로그램 추진으로 박물관 향유계층 확대
2013년도 주요업무 추진방향
관람객 중심의 내실 있는 박물관 조성
웅진백제문화 정체성 조명을 위한 조사,연구…
1983.02.04,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48차 정기총회 회의록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회의를 통해 1982년도 사업실적 및 세입세출 결산안 심의를 진행했고, 나아가 1983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 심의도 병행했다.
1952년 영명중학교에서 주최한 주산경기대회에서 2등을 한 전영진님의 상장이다.
전주이씨 덕천군의 18세손 '은(殷)'자돌림 자손들의 친목회인 '은행회(殷行會)'의 1998년도 결산보고자료이다. 회비수입지출내역, 회원주소록, 회원의 회비납부내역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풍마동 다보탑의 모습이다. 마곡사의 정전인 대광보전 앞 마당에 위치한 마곡사 5층석탑으로 금동제 상륜부는 라마식 보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재의 위치보다 대광보전에 더 가깝게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