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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이장이 발행한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이다. 고지서에 의하면 8월5일까지 면사무소에 일금 사천오백원을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고지서 및 영수증 모두 우측에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과 납부비목을 기재하는 양식으로 통일하였다.
2006년 전국 새마을 지도자대회 참가 일정
1954부터 1957년 초까지 영명고등학교를 재학한 기증자가 졸업을 앞두고 동무들로부터 롤링페이퍼를 수령하여 엮은 일종의 추억록이다.
1995년 보병제32사단에서 주최한 제47주년 국군의 날 기념 '1995년 호국문예 창작대회'에서 유구국민학교가 군가합창경연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여받은 내용의 상장이다.
무령왕 교류 진제이정 실행위원회(공식번역)에서 보낸 공문들이다. 제1쪽은 2004년 3월 2일에 보낸 것으로, 백제 무령왕 탄생해협지 역사 문화 포럼에 강사로 오시는 것을 승낙하며,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제2쪽은 2004년 4월 30일에 보낸 것으로,…
1961년도에 발행된 반포국민학교 2학년 3반 남신현 학생의 어린이 학교생활통지표이다. 표지에는 부친에게 발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지난 1년 동안의 교과학습의 발달상황, 행동의 발달상황, 특별활동상황, 신체검사상황, 출석상황, 통신 및 확인란 등을 적을 수 있도록…
윤여헌 교수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글이다. 제53회 백제문화제의 대성공을 축하한다, 地元佐賀신문에서와 같이 퍼레이드 참가, 4대왕추모제,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 등 백제문화의 대단히 일부를 보여준 한국 사람들의 두터운 인정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조선조의 역대 군주 명단이다. 태조부터 순종까지의 이름이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1927년 3월 노성향교 유림들이 정사홍의 업적을 추숭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자고 박승규(朴勝圭) 외 28인이각 지역 서원과 향교에 보내는 통문이다. 정사홍의 가계와 행적이 수록되어 있고, 노성향교 인장이 찍혀 있다.
웅진자모도서회원 주소록과 1994년도 운영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메모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로, 이회창 총리 사임에 따른 헌법논의에 관한 것이다. 총리의 행정각부 통할문제, 임명된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 대통령의 겸임 금지 조항, 정당해산 시 의원의 진퇴문제, 정당원과 양심에 따른 표결의 자유, 권력구조자체에 대한…
1947년 반포국민학교 제1학년 서민식 학생의 성적통지표이다. 겉면에는 연도와 학년, 아동성명이 적혀있고, 내지에는 학기별 성적이 갑,을,병,정,무로 등급을 나누어 매겨져 있으며 출석현황과 신체현황 등을 적을 수 있는 란도 있다. 성적통지표 뒷장은 학년 수료증으로…
2004년 공주시에서 작성한 국제 도자문화 교류 촉진에 관한 연구 문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제1장 유전 자기의 도조 이삼평공
제2장 유전의 도자문화
제3장 유전 도자 대전과 도자기장
제4장 공주지역의 도자문화
제5장 공주시의 도자문화 진흥을 위한…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1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1957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2,200환을 납입한 것을 증빙하고 있다. 영수하는 비목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3월분이라는 표기만 수기로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은 금액 상단에 적혀있다.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 내 부도군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1954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가불금 영수증이다. 문서 상단에는 일제강점기 이후임에도 인쇄된 소화(昭和)연호에 따라 연월일을 기재하였다. 표 안에는 감정과목(勘定科目)이 가장 상단에 적혀있고, 그 아래 좌측에는 금융조합의 조합원번호 및 조합원명, 중간칸에는…
현재의 쌍수정 부근 성벽 위에서 제민천과 금강이 합수되는 금성동 일원을 바라본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좌측으로 정지산과 그 뒤 연미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곳은 본래 금강물이 드나들던 저습지였는데, 제방이 축조되면서 개간이 이뤄졌다. 그 뒤 몇 채 되지 않지만 민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