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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20년 3월 22일에 계룡공립국민학교에서 발행한 민병영님의 졸업장이다. 창씨개명한 성명(평강병영)과 생년월일도 졸업장에 기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윤여헌 교수가 키요미즈 준(淸水 淳) 내외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안문이다. 공주에 왔을 때 충분히 소개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 하며, 실크로드에 관한 기행문을 동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도미상의 향토출신 서화가에 관한 원고이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봉계(鳳溪) 김재석(金在奭), 구종서(具宗書), 이팔찬(李八燦), 기타(석일화, 창석, 승헌 신찬우, 운제 이공원)의 연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남궁화가 1964년 4월부터 1966년 5월까지 쓴 보덕일지로, 울진과 대구에 있을 때 쓴 것이다. 백지에 수기로 일지의 각 칸을 직접 만들어 내용을 기입하였다. 일지의 첫 부분에는 친구와 지인의 사진,측량활동기간의 사진 등도 수록되어 있으며, 년간 달력을 별도로 오려…
연도미상의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우석(愚石) 김기창(金基昌), 화당(和堂) 김재배(金栽培)에 관한 원고이다. 각각의 연혁을 담고 있으며, 제목 옆에는 '향토출신근대서화가'라는 윤교수님의 자필메모가 쓰여져있다.
2003년도 학교 교육과정 운영계획 심사 결과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 운영과 '함께 가꾸는 학교 꿈을 키우는 교육'의 실현 의지가 타 학교에 모범을 보여 2003년 5월 21일에 공주고등학교가 받은 충청남도교육감 표창장이다.
2007년 8월 28일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왜곡된 지명을 올바르게 정비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관내 계룡산 천황봉에 대해 지명변경심의를 한 보고서이다. 지명변경 설명자료, 심의안건, 관련법, 심의사항,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지명 변경의 적정여부가…
이문호의 조모 ‘이영자’의 초상 시 작성된 부의록이다. 첫 장에 '4290년 10월 15일'과 '부의록'이 적혀있다. 내용을 보면 상단에 부의객의 이름이 적혀있고 그 아래에 부의물품과 그 수량이 적혀있다.
새마을 교육훈련과정의 교사새마을반을 수료하였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상단에 수료자의 소속과 직명, 성명, 생년월일을 포함한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그 아래로 수료내용을 기록하였다.
1978년 2월 서해만이 공주군 반포면 지방농림기사보로 재직 시 공주군수로부터 받은 표창장이다. 77년도 취락구조개선 사업추진에 기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윤광안에 대한 메모이다. 윤광안은 충청감사를 지낸 인물로서 호는 반호(盤湖)다. 이 기록에는 1808년에 영양 소재의 운곡서원을 철거한 일로 인하여 탄핵을 받아 무산에 유배를 간 사실이 기재되어 있으며 우측 하단에는 갖은자로 1부터…
1998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백제문화선양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제 42회 백제문화제의 행사종목 변경 , 세부추진계획 , 행사예산안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회의요약 , 부여군백제문화선양위원회 명단 수록
공주시 새마을전직 모임회 참석협조 공문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7년 6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이름을…
1991.02.20,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63차 정기총회 회의록이다. 총회를 통해 1990년도 사업실적보고 및 세입세출 결산안 심의를 의결했고, 1991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심의했다.
행사배치도로 추정되나 어떤 행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입구, 무대, 좌석, 기둥, 참석인이 적혀있다.
1977학년도 제53회 정안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배포한 학사보고 안내서이다.
2010년 4월 8일 공주시청 부시장실에서 개최한 공주시 향토문화유적보호위원회 회의 안내 공문이다.회의자료가 첨부되어있다.
수부(受附)와 등기 목적, 원인일, 권리자의 성명과 주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등기제에 의하면 소유자 이전 신청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등기제를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등기제 대신 등기신청을 마친 문서라는 뜻으로 '등기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