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윤여헌 교수가 공주향교 양사재 거접절목과 명륜당 중수기를 해석하고 자필로 쓴 해석문 초안이다. 마지막 장에는 수령칠사에 대한 설명과 반계수록의 문장이 발췌되어 있다. 그는 이 자료 해석을 한 후,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 간행한 웅진문화 제 6집에 '공주향교부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7년 6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이름을…
2005년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한 우금티소식 제2호의 복사본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사단법인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출범식
법인 설립 경과
우금티 소식
구전조사를 통해 나타난 공주의 동학농민전쟁 관련 사망자
1988년 공주문화원에서 발송한 제15대 이사장 취임식 통지문이다. 당시 14대 이사장인 박찬무 공주시장이 직위에서 경질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사장 직위도 공석이 되었다. 이에 공주문화원 정관에 따라 후임 이사장으로 새롭게 임명된 이근영 공주시장을 이사장에 피선하고…
1986년도 공주시 내 여성지도자 협의회 구성 명단이다.
1993년 충청남도 공주교육청에서 주최한 학교 간 경기 공주시.군 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박화영 학생이 여국부 800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를 표창하는 내용의 상장이다. 학생 성명 하단에는 지도교사명도 기재되어 있다.
1970년 8월 서해만이 공주군 정안면 지방농업기원보로 재직 시 내무부장관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다. 내무행정 주요 시책 구현에 기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1954년 납부금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분의 납부금으로 일금 칠만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9년 6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화마루공소 구술조사 사례자인 최인철의 2009년 화마루공소 회장 임명장이다. 최인철은 모태 가톨릭 신앙인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화마루공소 회장을 6회 역임하였다.
1980년 공주고등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다.
공주중동국민학교 4학년 3반 담임 곽호영이 교무 관련 사항 및 학생 지도 상황을 기록한 수첩이다. 커버 앞표지에 ‘1987학년도 학급경영기록부’ 문구가 금박 인쇄되고, ‘중동국민학교,’ ‘4학년 3반,’ ‘담임교사 곽호영’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1. 국정지표 및…
우편물수령증으로 접수번호, 요금, 중량등이 기입되어있다.
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문서이다. 영명학교에서 1906년에 보통고를 폐지하고 학생을 공주공립보통학교로 이송하였다는 이야기,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는 1921년에 완공된 옛 영명학교 본관을 안정상의 문제로 2002년도에…
1969.02.27,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22차 이사회 속기록이다. 당시 1968년도 사업실적 보고와 함께 감사보고, 세입세출 결산보고, 1969년도 세입세출 예산서 심의가 진행되었다.
1956년 영명고등학교 2,3월 분의 사친회비 800원을 납입하였다는 영수증이다.
2009년 국립공주박물관 체험 프로그램 안내 문서인데 일부가 분실되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5. 흙에서 온 내 친구
6. 학교연계프로그램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문화재 체험학습"
7. 고3 대상 프로그램 "Go Go 희망으로"
8. 국립공주박물관 단체관람객…
일제강점기 공주 상반정(現 봉황동 일원) 부근에 위치한 상반여관이다. 당시 공주의 대표적인 여관으로 시찰단 등 주요인사가 머물기도 했다. 엽서 중간에 상반여관 입구의 모습과 측면을 후편집하여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