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2년 4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1996년 2월 3일 시행된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공문이다. 지금의 교동 175-7번지(현 대우교동 아파트)에 고층 아파트 건립될 경우 공주시내 문화재 환경에 저해되는지를 묻는 공주시 도시과 및 문화관광과의 공문에 화답하는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회신공문이다.…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위원목록, 행사일정표, 진행계획표를 수록함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1954년 수업료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4,5,6월에 걸친 3개월분의 수업료가 청구되어 있으며, 팔백이라는 숫자를 오기하여 지우고 1,200을 새롭게 기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1978년 1월 10일 10시에 공주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진행한 1977학년도 공주고등학교 제51회 졸업식에 사용된 당해년도 학사보고서 안내장이다. 시간, 장소, 식순, 학교장 훈사, 공주고등학교 연혁, 직원현황, 졸업생현황, 재학생현황, 수상자 일람이 실려있다.
공주 배다리(구 금강교)유적 조사 - 배다리(구 금강교) 관련 신문기사 이미지 (17)_매일신보
남궁화가 1975년 공주, 서울 등 각지에서 쓴 일지이다. 현대출판사에서 제작한 기성품 일기에 기록된 1975년 일지에는 각 월마다 월중예정표를 성실하게 작성하고 하루일과를 기록하였다. 부록의 내용은 기입하지 않았다.
서류1 : 공주사범대학 교가
1956년 공주중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제3기분의 수업료 및 납부금 일금 삼천일백오십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한국저축은행 공주지점에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상단에는 '공중'이라는 표기가…
제15회 공주직업소년학교 졸업식에서 배포된 안내서이다. 각종 시상자 명단과 식순 등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윤영태 선생님이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학생증이다
2009.4.6. 작성된 의 4월 모임 안내문이다. 모임일자는 2009년 4월 16일이며, 장소는 서울 서초동 천년부페&웨딩홀이다. 아울러 안내문에는 해당 동문회의 이기수 동문의 부고 소식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청련암 인법당에 걸린 청련암 편액에 대한 것이다. 본 편액에는 우측면에 도광 29년이라는 연대가 기록된 것이 특징이다.
1956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대출금 영수증이다. 문서 상단에 날짜 아래로 표가 있는데, 계정과목(計定科目) 이하로 조합원의 인적사항이 적혀있다. 적요(摘要)란에는 가영수증(假領收證), 기한, 대부금 잔액 등을 적을 수 있는 란이 있으며, 가장 우측에는 영수금액 및…
2009.1.13. 국립공주박물관운영자문위원회 구성,운영 계획보고서이다. 구성,운영 근거 / 구성 및 운영 / 운영자문위원 / 제1차 회의개최 계획 / 붙임1 관계법령 / 국립공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회 규정 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소신을 담아 바로잡아야 공주역사문화를 간단하게 목록으로 정리 하였다. 총 19가지를 제언사항으로 다루었으며, 추후에 몇 가지는 빨간색 또는 검정색으로 중선을 그어 삭제하는 의미를 담았다. 주로 언급된…
1964.08.27, 다방 왕궁에서 진행한 제103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당시 감상곡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되었고, 참가회비로 30원이 징수되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0년 1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수부(受附)와 등기 목적, 원인일, 권리자의 성명과 주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등기제에 의하면 소유자 이전 신청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등기제를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등기제 대신 등기신청을 마친 문서라는 뜻으로 '등기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