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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작성된 정안국민학교 전학원서이다. 정해진 양식 없이 수기로 작성되었다. 문서 상단에 교무부장, 교감, 교장선생님의 인장이 찍혀있다. 전학수속을 원하는 학생의 이름과 학년, 반, 생년월일, 보호자의 이름과 서명, 작성일이 본문에 적혀있다. 정안초등학교는…
1961년 공주중학교 신입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입학금 일금 삼만일천팔백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한국제일은행공주지점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문서 우측 하단에는 납부를 증빙하는 도장이 찍혀있다. 입학금은 입학금 일금600환, 수험료 1기분 일금 1,500환,…
일자 1997.6.26., 장소 새이학가든이다. '문화가 살아있는 公州' 소책자 발간 기념회이다.
1992.02.28에 진행할 제64차 공주문화원 정기총회 개최 통지문이다. 본 자료에는 1993.02.16에 진행할 제66차 정기총회 개최 통지문 작성을 위한 수기 편집 흔적이 남아있다.
1970.05.19에 진행될 예정이던 공주문화원 시국강연회는 내부 사정으로 인해 05/20으로 변경되었다.
황현의 기록 가운데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 봉준이 농민군을 이끌고 공주의 경천 마을에 주둔하여 당시 충청감사였던 박제순과 충돌한 내용만을 발췌하였음.
이 문서는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에 대한 논문 초안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사이의 이념 분쟁을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구성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 논문은 이후에 1976년 12월 공주사범대학 논문집 14호에 게재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몇…
일본 도쿄에 있던 윤여헌 교수가 한국에 사는 아들 윤태식 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윤여헌 교수가 일본에서 지내면서 가족을 위해 전기요나 시계, 카메라 등을 사 놓았다는 이야기에 진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12월말경에 귀국할 예정인데, 외무부와 이야기가 되면 부인을…
2000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1966.10.28,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10차 이사회 회의 속기록이다. 회의에서는 1966년도 공주문화원 추경 예산안을 상정하여 심의하였고, 기타 문화원 운영사항에 대해 협의했다.
윤여헌 교수가 이구치켄(井口 賢明)에게 보내는 서신의 초안문이다. 서신의 첫 머리에 질문에 답한다고 쓴 것으로 보아, 이구치켄이 윤여헌 교수에게 '궁원(弓院)'의 의미에 대해 문의하는 편지를 먼저 써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윤여헌은 서신초안문에 궁원(弓院)에 대해…
남궁화가 1975년 공주, 서울 등 각지에서 쓴 일지이다. 현대출판사에서 제작한 기성품 일기에 기록된 1975년 일지에는 각 월마다 월중예정표를 성실하게 작성하고 하루일과를 기록하였다. 부록의 내용은 기입하지 않았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신탄비 영수증이다. 발행연도가 공란으로 되어 있으나, 자료제공자가 재학할 당시와 인쇄된 단기연도로 미루어보아 195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탄비는 땔나무와 숯의 구입에 지출되는 일종의 연료비용으로 일금 일만삼천원을 영수하였다.…
1956년 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2,3월 분의 사친회비 일금 800환을 납입하였다는 영수증이다. 영수증에는 수업료, 호국단비, 사친회비 명목이 인쇄되어 각각 기재할 수 있도록 분류하였으나 사친회비만 청구하고 납입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정안국민학교 동창회 일동은 이를 기념하여 피아노 1대를 기증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은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에 대한 메모이다. 이 고장은 역사문화도시로서 백제와 조선을 구분지어 타 지방의 문화재와 차별성을 두는 방안을 메모하였다. 먼저 무령왕에 대한 홍보브랜드 전략으로서 왕릉, 무령왕 관련 박물관 부장품, 정지산유적 복원, 만화 제작,…
1798년 마곡사에서 발행된 공주이씨세보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