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영명학교에서 예배 인도하는 우리암 교장과 학생들의 모습이다.
1937년 10월 15일 영명학교 개교 30주년 행사에서 설립자 우리암 교장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동상은 1940년대 초 일제의 공출에 의해 없어졌고, 1985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1940년 11월 24일 강제출국을 당한 우리암 교장의 출국을 배웅하는 장면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선교사들을 추방하였다. 우리암 교장이 떠난 후 영명실수학교는 1942년 3월에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영명학교의 우리암 교장 부부와 그의 아들 우광복의 모습이다.
영명학교 설립자 우리암 교장 가족이다.
영명학교 설립자 우리암 교장이다.
영명학교 설립자 우리암 교장 부부이다.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있었던 건물로 영명학교의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곳이다.
영명학교 우리암 선교사의 부인 우애리시 선교사이다.
영명학교 우리암 선교사의 부인 우애리시 선교사이다. 우리암 선교사는 1909년 영명학교라는 교명으로 정식 인가 받아 학교를 설립하여 심상과와 고등과를 운영하였다. 명선여학당도 영명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영명남학교와 대등하게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2019년 9월 영명학교 선교사 가옥 부근에서 시가지 방향을 드론을 통해 기록한 자료이다.
1963년 공주사대 졸업생 중 일부가 영명학교와 앵산공원 부분을 배경으로 촬영한 졸업사진이다.